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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의 역설: 다주택자를 잡으니 서울 집값이 뛰었다?

부동산 규제의 역설: 다주택자를 잡으니 서울 집값이 뛰었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 특히 ‘집값’ 이야기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입니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수십 차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규제의 핵심 타깃은 언제나 ‘다주택자’였습니다.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투기를 일삼아 시장을 교란하고 집값을 올린다는 판단 때문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다주택자를 옥죄면 옥죌수록, 서울의 핵심 지역 집값은 오히려 더 가파르게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오늘은 부동산 규제, 그중에서도 다주택자 규제가 불러온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다주택자 규제, 그 의도와 현실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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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는 명확했습니다. “집을 거주 목적이 아닌 투기 수단으로 삼는 다주택자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려 매물을 내놓게 하겠다”는 것이었죠. 취득세, 종합부동산세(보유세), 그리고 양도소득세까지 소위 ‘세금 폭탄’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중과세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것이 세금 때문에 부담스러워지면, 자연스럽게 시장에 매물이 쏟아져 나오고 공급이 늘어나니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이 간과한 것은 바로 시장 참여자들의 ‘합리적 선택’이었습니다.

‘똘똘한 한 채’ 신드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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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시작되자, 자산가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세금 부담과, 그중 일부를 처분했을 때의 득실을 따져본 것이죠.

그 결과, 시장에는 ‘똘똘한 한 채’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급부상했습니다. 어차피 여러 채를 가질 수 없다면,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의 애매한 주택 여러 채를 정리하고, 그 돈을 모두 모아 서울 강남이나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과 같은 핵심 입지의 가장 비싼 아파트 한 채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1주택자는 다주택자에 비해 세금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무엇보다 서울 핵심 지역의 부동산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규제를 피하려는 자금이 서울의 알짜 아파트로만 쏠리면서, 이 지역의 집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폭등장세가 연출되었습니다. 다주택자를 잡으려던 규제가 오히려 서울 핵심지 집값을 밀어 올리는 기폭제가 된 셈입니다.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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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한 채’ 현상은 단순히 서울 집값 상승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부동산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심화시켰다는 점입니다.

다주택 규제가 강화되자, 사람들은 지방에 있는 주택부터 팔아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아파트는 서울에 비해 가격 상승 기대감이 낮고, 환금성도 떨어지는데 세금 부담만 가중시키니 굳이 가지고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지방에 투자 목적으로 집을 샀던 외지인들의 매물이 쏟아져 나왔고, 지방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반면, 지방에서 집을 판 돈은 다시 서울과 수도권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전국의 유동성이 서울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수도권은 과열되고, 지방은 소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산 격차를 넘어 국토 균형 발전까지 저해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규제 완화를 통한 자본의 분산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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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꼬일 대로 꼬인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역설적이지만, 문제의 원인이 되었던 다주택자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하는 것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서울 핵심지에만 수요가 몰리는 현상을 막으려면, 투자 자금이 지방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지방 저가 주택이나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다주택자에게는 취득세나 양도세 중과를 배제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지방에 집을 사도 세금 부담이 크지 않다면,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자연스럽게 지방으로 흘러 들어가 서울의 집값 상승 압력을 낮추고 지방 부동산 시장에도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은 거대한 댐과 같습니다. 물길을 억지로 막으면 댐이 터지거나 예상치 못한 곳으로 물이 넘쳐흐르기 마련입니다. 이제는 힘으로 누르는 규제보다는, 시장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본이 필요한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유도하는 지혜로운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주택자를 무조건적인 ‘투기꾼’으로 몰아세우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임대주택 공급자이자 지역 경제 활성화의 주체로 활용하는 유연한 사고의 전환이 절실합니다. 그래야만 ‘미친 집값’을 잡고,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부동산 시장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 4.0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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