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쿠팡과 김범석 의장: 규제의 파도를 넘는 '미국식' 생존 전략과 그 이면
“미워 죽겠는데, 밤마다 생각나는 나쁜 남자 같다.” 최근 쿠팡을 바라보는 대중과 시장의 시선은 복잡 미묘합니다. 편리한 로켓배송 때문에 안 쓸 수는 없지만, 각종 논란으로 인해 마음 놓고 쓰기도 찝찝한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초기 투자자였던 알토스벤처스의 한 킴 대표마저 쿠팡 탈퇴를 인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죠.
오늘은 천준범 변호사(와이즈포레스트 대표)의 분석을 통해 쿠팡이 어떻게 규제를 넘어 성장했는지, 그리고 왜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문제가 뜨거운 감자인지 해부해 봅니다.
1. 100% 미국 회사, 치밀하게 설계된 지배구조
쿠팡이 한국 기업이냐 미국 기업이냐 하는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쿠팡은 철저히 미국 기업의 구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 상장의 비밀 (NYSE): 쿠팡은 나스닥(NASDAQ)이 아닌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습니다. 핵심 이유는 차등의결권입니다. 김범석 의장은 지분율은 낮지만, 일반 주식의 29배 의결권을 가진 ‘클래스 B’ 주식을 통해 76.7%의 의결권을 행사하며 경영권을 방어합니다.
- 세금과 자회사: 미국 모회사(Coupang Inc.)가 한국 쿠팡(Coupang Corp.) 및 계열사 지분을 100% 소유하는 구조입니다. 미국 세법상 자회사 지분율이 80% 밑으로 떨어지면 모회사가 배당받을 때 세금 감면 혜택이 사라집니다. 이 때문에 쿠팡은 자회사를 따로 상장시키기보다 100% 자회사로 두는 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2. 규제가 낳은 괴물? 위기를 기회로 바꾼 ‘피벗(Pivot)’
쿠팡의 역사는 ‘규제와의 싸움’ 그리고 ‘극적인 승리’의 연속이었습니다.
① 소셜커머스의 몰락과 이커머스로의 전환
2010년 쿠팡은 티켓몬스터, 위메프와 함께 ‘소셜커머스’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핵심 BM은 ‘환불 불가’ 조건으로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으나, 공정위가 “소셜커머스도 통신판매업자이므로 7일 이내 환불을 보장해야 한다”라고 결정하면서 사업 모델이 사실상 붕괴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규제 덕분에 쿠팡은 직매입 방식의 이커머스로 전환하게 됩니다.
② 로켓배송과 ‘흰색 번호판’ 전쟁
2014년 로켓배송 도입 당시, 택배업계는 “자가용 화물차(흰색 번호판)로 유상 운송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형사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쿠팡은 “남의 물건을 배송해 주는 택배(유상 운송)가 아니라, 우리 물건을 고객에게 가져다주는 것(무상 운송)“이라는 논리로 맞섰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쿠팡의 손을 들어주면서, 쿠팡은 경쟁사들이 주춤할 때 독보적인 물류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승소를 이끈 인물이 당시 김앤장 변호사였던 강한승 현 쿠팡 대표입니다.
3. 김범석 의장, 그는 왜 ‘총수(동일인)’가 아닌가?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는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여부입니다.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 집단은 총수를 지정해 사익 편취 등을 감시하는데, 김 의장은 외국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한국 재벌 문화에서는 회장이 법적 권한 없이 계열사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정거래법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를 동일인으로 지정하여 책임을 지웁니다.
- 김범석의 딜레마: 김 의장은 2021년 한국 쿠팡의 모든 직책에서 사임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미국 모회사의 경영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한국 사업에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고 있다면? 그는 실질적 지배자로서 동일인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입니다.
- 지정되면 무엇이 달라지나?: 김 의장이 동일인이 되면 친인척 거래 내역 등을 공시해야 합니다. 만약 지정 후에도 한국 경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했다면, 권한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명분이 생깁니다.
4. 마치며: 진짜 중요한 것은 ‘책임’이다
쿠팡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기업 규제 이슈를 넘어섰습니다. 홈플러스 인수설이나 세무조사 이슈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본질은 ‘보안과 책임’입니다.
최근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미국에서는 소송이 어려운 건입니다. 피해 당사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엉뚱하게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느냐 마느냐에 에너지를 쏟기보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기업의 근본적인 책임을 묻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소비자에게는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권한을 행사했다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쿠팡이 진정한 ‘혁신 기업’으로 남기 위해서는,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스마트함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태도가 필요해 보입니다.
References: [1] 쿠팡과 김범석 의장 분석 영상(와이즈포레스트 천준범 변호사)
